이 글은 조진웅 은퇴 사건의 사실관계를 다시 정리하려는 글이 아니다.
이미 사건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 이 논란이 왜 반복되고 어떤 판단 습관이 작동했는지를 분석하려는 글이다.
관심의 대상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을 둘러싼 사회의 반응 방식이다.
배우 조진웅의 은퇴 선언은 단순한 연예계 이슈를 넘어섰다. 법적 처벌이 이미 종료된 과거의 행위가 다시 공론장으로 소환되었고, 그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빠르게 정치적 진영 논쟁으로 번역되었다. 더 나아가 법학자들까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며, 이 사안은 “은퇴가 옳은가, 과도한가”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 사회가 판단하는 방식 자체는 건강한가라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분명하다. 개인의 과거를 다시 재판하거나, 특정 인물을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 이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사회의 반응 구조를 분석하고, 다음에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민주시민으로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은퇴 선언 직후, 이 사안은 빠르게 “범여권의 동정론”과 “보수 진영의 비판”이라는 구도로 재편되었다. 일부는 “청소년기의 잘못을 언제까지 묻느냐”고 했고, 다른 일부는 “피해의 무게를 잊은 관용”이라고 맞섰다. 문제는 이 순간부터 논쟁의 초점이 사안의 성격이 아니라 진영의 정체성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이 사안은 애초에 진보·보수의 정책적 가치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복지, 시장, 국가 역할을 둘러싼 이념 대립과도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영 프레임이 작동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진영 언어는 생각보다 빠르고, 판단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영화된 판단은 사회를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판단을 멈추게 만든다.
이번 논란에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힌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은퇴는 잘못된 해결책이며, 응원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형법적 관점에서 이 논리는 일관된다. 법적 처벌이 종료된 사안에 대해 추가적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은 이중처벌의 위험을 내포한다는 지적은 정당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법률 전문성은 판단을 정밀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판단의 범위를 자동으로 확장해 주지는 않는다. 법은 행위를 판단한다. 처벌과 책임의 범위를 규정한다. 반면 이번 사안에는 법이 다루지 않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공적 영향력, 상징성, 사회적 신뢰, 그리고 개인의 양심에 따른 선택이다.
법학적 시선이 위험해지는 순간은 틀렸을 때가 아니다. 불충분한 판단이 전체 판단처럼 작동할 때다. 법의 언어가 사회 전체의 윤리 판단을 대체해 버리는 순간, 사회는 중요한 질문들을 놓치게 된다.
이번 논쟁에서 “사회적 매장”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분명히 해야 한다. 사회적 매장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은 아무 반응도 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매장이 가진 구조적 결함이다.
첫째, 사회적 매장은 기준을 남기지 않는다. 분노는 소모되지만, 원칙은 축적되지 않는다. 둘째, 다음 사건에서 동일한 혼란이 반복된다. 왜 어떤 경우는 관용이고, 어떤 경우는 배제인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셋째, 가장 치명적으로는 자발적 책임과 윤리적 퇴장까지 위축시킨다. 스스로 물러난 선택조차 “봐라, 결국 더 매장당했다”는 선례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명히 말해야 한다. 사회적 매장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판단 능력의 포기다.
이번 은퇴를 둘러싼 또 하나의 왜곡은, 이를 영웅적 희생이나 사회의 강압으로만 해석하는 태도다. 개인이 스스로 물러나는 선택을 했을 경우, 그것은 미화의 대상도, 조롱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 규범이 개인의 양심 안으로 들어온 결과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선택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자발적 퇴장을 더 큰 응징의 출발점으로 삼는 순간, 사회는 윤리를 말할 자격을 잃는다. 사회는 반응할 권리가 있지만, 그 반응에는 책임 가능한 기준이 필요하다.
유사한 사건이 다시 발생했을 때, 민주시민은 감정이 아니라 기준으로 반응해야 한다. 최소한 다음 다섯 가지 질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반응은 정의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사회를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 사안이 남겨야 할 결론은 하나다. 이것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법 하나로 환원될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가의 문제다.
건강한 민주사회는 사람을 쉽게 밀어내는 사회가 아니다. 밀어낼 때조차 기준을 남기는 사회다. 분노하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분노를 제어할 책임 위에서만 민주사회는 유지된다.
조진웅 은퇴 논란이 우리 사회에 남겨야 할 유산은 특정 인물에 대한 최종 판결이 아니다. 다음번의 판단을 더 성숙하게 만들 기준이다. 이것이 이번 논쟁이 공익적이어야 하는 이유다.